“이 글은 the art of project management란 책에서 권력의 근원 부분을 읽고 게임 기획자의 관점에서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쓴 글입니다.”
왜 제목을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로 하지 않았나?
Power라는 단어는 힘, 능력, 권력 등으로 번역된다. 의미로만 보면 우리 말도 서로 바꿔 써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다. 하지만 그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힘이나 능력은 가치 중립적으로 받아들여 지기 쉽다. 하지만 권력이라는 단어는 긍정적인 뜻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대부분 “권력 남용“등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특히, 정치와 연관되어 생각하기 쉬우며, 이때는 더더욱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Powerful game designer를 다음과 같이 번역해 보자.
- 강한 권력을 가진 기획자. 듣기 좋은가? 아닐 것이다. 개발 정치판을 마구 휘젓는 사람이 떠오른다.
두 문장은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위 두 문장은 거의 동일하기도 하다. 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와 다르게, 기획자는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무척 힘들다. 어떤 기획을 하던지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해 구현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움직여야 한다. 사람을 만나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설득하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정치의 핵심이다. 결국 기획을 잘 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잘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권력과 정치는 좋은 것인가?
권력과 정치는 그 자체로만 보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권력과 정치는 그 자체만 본다면 가치 중립적이며, 의사 결정을 하고 함께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수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정치는 부정적이 되기 쉽다. 권력을 전체의 목적 달성이 아닌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의 만족을 위해 행사할 때, 그 권력은 부정적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이 빈번히 행사될 수록 정치 역시 부정적이 되어 버린다.
모든 의견과 권력 행사가 성공적인 게임의 개발만을 위한 것이라면, 권력과 정치 모두 좋은 것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권력을 가질 수 있을까?
본 글의 동기가 된 책에 따르면, 권력의 근원은 크게 5가지가 있다고 한다.
1. 보상.
가장 직관적이고 효과적인 권력의 근원이다. 이번 마감을 잘 지키면 특별 유급 휴가 3일을 준다던가,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인센티브를 듬뿍 얹어준다고 할 때, 움직이지 않을 개발자가 몇이나 될까? 보상은 훌륭한 동기 유발제이며,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보상을 줄 권한을 가진 사람의 말을 잘 들을 것이다. 하지만, 사장, 이사 정도의 직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러한 보상을 주기 힘들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누구나 할 수 있으면서도 효과가 괜찮은 보상이 있기는 하다. 칭찬,위로, 격려등 심적인 보상은 말 한마디로 가능하다.
2. 처벌.
보상과 마찬가지로, 직관적이고 강한 권력의 근원이다. 보상과 마찬가지로, 일개 기획자로서는 하기 힘들고, 설령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상대방을 모욕, 무시하는 등의 언행도 처벌의 한가지가 될 수 있다. 아주 가끔 사용한다면,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려 움직이게 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3. 지식
대부분의 의사 결정을 지식 기반으로 하게 되는 게임 개발에 있어서, 지식에 의한 권력은 그 힘이 매우 강력하다. 또한, 기획자가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권력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기획자는 다른 개발자들에 비해 게임 경험이 많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풍부한 지식에 근거하여 다양한 예를 들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뜻을 따르게 할 수 있다. 맡은 일을 잘 해결하는 것 역시 지식에 의한 권력 획득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타입의 권력이 강해질 경우, 상대방의 지각력까지 왜곡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애플 컴퓨터의 CEO, 스티브 잡스는 지각력 왜곡 필드가 무척 강하다고 한다!)
쉽게 획득할 수 있는 만큼, 주의도 해야 한다. 특히 강한 권력을 가지기 위해 “잘 아는 척”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4. 준거
누구의 밑에서 누구를 위해, 누구를 대행하여 일하는가? 에서 나오는 권력이다. 조직 사회인 게임 회사에서 준거는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권력이다. 기획 팀장이라면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 밑에서, 게임 전체의 기획적인 부분을 대행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실만으로, 권력을 얻을 수 있다.
5. 영향력
의사 소통 능력, 자신감, 감정 인지력, 관찰력 등으로 생기는 힘이다. 카리스마와 타인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이러한 권력을 만들어 준다.
개인적인 친분에 의한 영향력도 무척 강하다. 팔은 안쪽으로 굽는다. 평소에 친하게 진하고, 술도 많이 사준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따라줄 가능성이 크다.
맺으며.
이상주의적으로는, 게임을 개발할 때는 정치도 없고, 권력을 행사할 일도 없는 것이 가장 좋을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한가지 목표를 바라보며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의기 투합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좋은 뜻만 가지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려고 해도, 의견의 차이는 생길 수 밖에 없다. 각자의 생각, 경험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를 좁히기 위해 논의가 시작된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러한 의견 차이에 의한 논의가 없다면 좋은 게임이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러 사람의 생각이 어우러지면서 더욱 더 재미있는 게임이 만들어 질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의견의 차이가 생기기 시작하고, 논의가 필요하게 되고, 논의된 결과를 가지고 작업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권력이 필요하게 된다. 아무리 멋진 게임을 기획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밀리거나, 개발자가 작업을 진행하게 하지 못한다면 그 기획은 아무 쓸모도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