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비디오 게임 – 1부, 개괄

    게임과 관련된 도서를 다음과 같이 3가지 범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게임 플레이어를 위한 책
    두 번째는 게임 개발자를 위한 책
    세 번째는 게임을 학문적으로 접근한 책.

    앞의 두 가지 범주의 책은 존재 의의가 명확하다. 각각 게임의 공급자와 소비자를 대상으로 쓰여진다. 하지만 세 번째 책은 조금 다르다. 어느 쪽에도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범주의 책은 현상에서 한걸음 떨어져 있는, 다시 말해 게임을 만들지도 않고 즐기면서 플레이 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게임 디자이너에게 이러한 종류의 책이 유용할까? 적어도 게임의 범주와 정의가 무엇인지 알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밸런스 잘 맞고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는가? 라는 관점만 생각해보면 이런 책은 필요 없을 것이다. 당장 주어진 기획 항목에 대해 논리적으로 결함 없고 사용하기 편리하게 기획하는 것이 더 급한 게임 디자이너에겐 ‘인간이 느끼는 재미의 유형에는 어떠한 게 있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내용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모델이 되는 수 많은 게임들이 있으며, 그들을 충실히 분석하는 것 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실무 게임 개발자들이 이런 종류의 책을 읽고 게임에 대한 학문적 관점에 익숙해 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지식은 게임을 바라보는 또 한가지 지표가 되어 만들고 있는 게임의 발견하지 못한 빈 공간을 채워 줄 수 있을 것이며,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나 게임 요소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개인적으로 게임에 대한 학문이 실용적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실제로 게임을 제작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재대로 된 게임 개발 능력은 학교나 학원에서는 배울 수 없으며,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혀야만 배울 수 있다.’ 라고 할 것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책 읽고 사진 찍어두는 것을 잊었다. 이미지 출처는 인터파크.

    스크롤, 탐험 그리고 메모리 : 비디오 게임 공간을 만들고 저장하기
    <애스터로이드>에서 스크린은 말 그대로 그 공간의 경계이다. 실제로 스크린 밖으로 혹은 스크린 위로 날아가면 단순히 반대편 스크린의 모서리에서 다시 나타날 뿐이다. ~ 스크린을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더욱이 그것은 움직일 수도 없다. ~ 세계의 범위는 스크린으로 제약된다. <헤일로>나 <슈퍼마리오 션샤인>과 같은 게임은 다르다. 이들 게임에서 세계는 하나의 스크린에 표시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크다. 이 세계는 횡단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탐험되어야 한다. 사실 이들 게임의 가장 기본적인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런 탐험, 즉 공간을 가로지르는 여행이다.

    게임에서 공간. 탐험이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특히 게임 세계의 현실감이나 정말 게임 속의 또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내가 그 속에 있다는 느낌 (be there. 라고 표현하는) 을 만들어 내는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요소이다.

    특히 공간의 광활함을 고려한다면 텔레포테이션의 사용은 편리한 것이겠지만, 이는 탐험욕을 저하시키고 잠재적 조우를 제약하며 공간적 관계에 대한 유저의 지식을 약화시키므로 결국 반생산적이라고 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게임 세계의 현실감을 높이고 게임의 분량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 놓은 광활한 공간이 원활한 게임 플레이에 지장을 주곤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많은 게임들이 제시한 대안은 순간이동이다. 위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반생산적이다.
    발매된 게임 중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공간의 광활함은 유지하되, 게임 플레이에 지장은 줄여주는 절충적 해결방법은 지정된 레일을 따라 이동하는 공용 탈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Q의 배, DAoC의 말, FF의 비공정, WoW의 와이번과 그리폰등을 그 예로 들고 싶다.

    비디오 게임 기회자들은 점차 3차원 공간에서의 완벽한 운동의 자유가 생각보다 혼란스럽고 다루기 힘든 것임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공간이 특정한 대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정한 규칙이 존재하는 게임세계라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대전 격투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가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3차원 공간에서 ‘일직선상에 위치한’ 플레이어들이 대전할 때조차도, 단지 피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전투에 참여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은 SNK의 <사무라이쇼다운64>의 실험이 입증하듯 문제가 된다. 플레이어로부터 이와 같은 고민을 덜어주는 것, 그리고 운동의 자유를 두 파이터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축에 따라 ‘전진’, ‘후진’, ‘점프’로 한정하는 것은 오히려 게임의 규칙을 따르고 게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플레이어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새턴용과 코인-옵으로 개발된 <버추얼 파이터2.1> 업데이트는 ‘상대방으로부터 뒷걸음치는 것을 더욱 어렵게(걸음 간격이 조금 길어졌다.)만들어 운동의 자유를 더욱 강하고 분명하게 제약하였으며, 이를 통해 플레이어들이 보다 격투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게임 세계는 현실을 그대로 재연한 세계가 아니다. 리얼한 것도 좋지만, 게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체스나 바둑을 보다 리얼하게 만든다고 격자 좌표계를 없앤다고 생각해보자.
    3D기술이 보편화 되면서 수 많은 게임 유형들이 2D에서 3D로 변화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게임들의 게임성이 훼손되었다. 2D는 상징화된 공간과 기호화된 세계를 표현하는데 3D보다 유리하다. 상징과 기호화가 게임성에 밀접한 유형의 게임의 경우, 3D로 만들어 질때 많은 진통을 겪었다. 성공적으로 3D 게임이 된 게임도 존재하지만, 일부 게임(대표적으로 비행 슈팅 게임)은 3D 공간에 표현되기는 부적절하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게임들은 3D로 그려졌지만, 실제 공간은 2D게임으로 절충점을 찾았으며, 때로는 계속 2D로 만들어 지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근래에는 3D만의 특성을 잘 살리고 그것이 표현되는 2D스크린의 특성도 살린 게임들도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 XBLA용으로 개발되고 있는 Fez나 PSP용 무한회랑를 예로 들어본다.


Fez

무한회랑

    어떤 비디오게임 아케이드에서든 게임을 하지는 않고 남들 게임을 지켜보기만 하는 수많은 구경꾼들을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플레이를 구경하러 아케이드에 간다는 것은 물론 별로 재미없는 일이다. 그러나 플레이어의 기술이나 재수를 부러워하며 지켜보는 건지는 몰라도, 이는 단순한 구경이 아니다. 이들은 배우고 있다. 경험 많은 플레이어들의 기술과 전략을 추종하는 것은 자신의 기술을 개선하는 데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스타크래프트의 커다란 흥행 이후, e-sport라는 용어가 생겨났으며, 게임 플레이를 TV를 통해 방영해 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 만들어 지는 수 많은 게임들이 e-sport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시작했으며, 관전 모드. 중계 모드등을 게임의 기능으로 넣기 시작했다. 이런 것을 만들때, 가장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위에 옮겨 적은 글에서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저가 원하는 것은 멋진 각도에서 보기 좋은 모습으로 게임 장면을 보여주는 것도 있겠지만, 게임이라는 관점에서 유저들이 정말 보기 원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조작을 하면 저런 것을 할 수 있을까?라는 정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생각하는 스타크래프트의 e-sports로서의 재미의 핵심 요소중 하나는 보는 것 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피터몰리뉴는 충분한 플레이 테스트를 거치지 않거나 품질 보증을 위해 충분한 조처를 취하지 않는 한 비디오 게임산업은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 강조한다.
    “모두가 ‘왜 게임은 더 나아지지 않는가? 왜 정말 좋은 게임은 없는가?’ 라고 말한다. 내 생각에 그 대답은, 놀랍게도 게임산업의 종사자들은 그들이 제작한 게임을 플레이 해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게임을 창작하고, 신이 주신 모든 시간을 팀별 작업에 쏟아 붓는다. 하지만 개발팀에게 게임을 플레이할 시간을 주지는 않는다. 바로 이것, 자리에 앉아 몇 시간이고 플레이를 해 보았느냐가 바로 게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다시 말할 것 없이 중요한 말이다. 그리고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만큼 필요한 말이다.

    게임은 단지 주어진 내러티브를 좇아 끝까지 가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많은 게임들이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의 내러티브를 갖는다고 이야기가 하나라고 할 수는 없다. 플레이어들은 이 내러티브 위에서 플레이를 하는 것이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플레이는 이야기를 창출하고 다시 쓰고 또 재구성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종종 내러티브와 상관없이 어떤 일에 집중하게 된다. 이를테면, 많은 플레이어들이 RPG를 할때, 주어진 미션과 내러티브를 해결하고 끝내기보다는 자기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데 관심을 두거나 아이템을 수집하는 데 열성을 보인다. 조우하는 모든 적들을 하나 남김없이 쓰러뜨리기 위해, 혹은 반대로 어떠한 적과도 싸우지 않기 위해 리셋 버튼을 누르거나 게임을 다시 한다.

    플레이어들은 내러티브 위에서 플레이 한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견해를 한마디로 정의해줄 수 있는 멋진 말이다.
    게임과 내러티브의 관계는 끝 없는 논쟁 거리이다. 어떤 학자들은 “모든 게임에는 내러티브가 존재한다.” 며 테트리스에도 서사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주얼드에 서사적 요소가 있음을 주장한 학자는 보지 못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게임이 사용자의 선택에 의해 시나리오가 바뀌는 인터랙티브 내러티브 매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지 오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관점에서 눈에 띄는 게임이 출시된 적은 없다고 본다.
    물론,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일부 시나리오가 강한 장르(어드벤쳐나 RPG등)을 재외하고는 내러티브가 게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내러티브가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MMORPG인 WOW를 보면 그렇게 이야기 할 수도 없다.
    “플레이어들은 내러티브 위에서 플레이 한다.”는 위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의 합이 아닐까?

    카이와(Caillois)는 규칙의 단순함과 복잡함에 따라 게임을 ‘파이디아(Paidea)’와 ‘루두스(Ludus)’로 구분한다. 예를 들어, 줄넘기(파이디아)는 브릿지나 축구(루두스)와 같이 더욱 복잡한 게임들로부터 구분될 수 있다. ~ 프리스카는 카이와의 ‘파이디아’와 ‘루두스’라는 용어를 변용한다. 파이디아가 유용한 목표나 제한된 목적이 없고, 그것의 이유가 오직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기쁨에 근거하는 것인 ‘물리적 혹은 심리적 행동’인 반면, 루두스는 ‘승리나 패배, 혹은 얻거나 잃는 것으로 상정되는 규칙의 체계 아래서 조직화된 행동’이다. 따라서 파이디아는 플레이어에 의해 이해되고 한정되는 반면, 루두스는 규칙이라는 외피에 근거할 것을 요구한다.
~ <그란투리스모>의 ‘프리 런’은 그야말로 아무런 제약 없이 그저 달리는 게임 방법을 말한다. 이 모드에서 게임의 규칙은 어떠한 면에서 게이머 스스로에 의해 부과되는 것뿐이다. 스스로 부과한 루딕(Ludic)한 규칙이 없다면, 이 모드는 그야말로 파이디아적 게임의 전형적 사례가 될 것이다.

    파이디아, 루두스등의 용어는 게임 디자인 실무에서 사용되지 않는다고 본다. 적어도 지금까지 일하면서 개발자들 사이에서 이런 용어들이 언급된 것을 들어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떻게 본다면 이러한 용어들은 학문적으로 정의된 용어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용어의 근원이 어찌되었던, 그것으로 인해 현재 나와있는 게임을을 더 잘 이해하고 생각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위에서 언급된 ‘파이디아’ 라는 용어를 생각해보자. 목표나 목적 없이, 물리적 혹은 심리적 행동을 하여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게임은 어떤 것이 있을까? 언급된 그란투리스모의 프리런 모드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것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 GTA에서 도시를 구석구석 탐험해보기.
  • 심즈에서 아무 조작도 안하고 심들 관찰하기.
  • MMORPG에서 아무 목적 없이 갈 필요도 없는 곳 가보기. 혹은 가보지 않은 물속 길 지나가 보기. 존의 끝에 도달하고, 경계에서 달려보기.
  • 바닷가에서 해 지는 것을 바라보기 등.

    비슷한 경험이나 게임플레이를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게임의 ‘파이디아’적인 면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재미. 그리고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MMORPG에서 실용적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컨텐츠의 존재 의의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며, GTA 시리즈의 배경의 방대함과 디테일함의 가치를 다시한번 상기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MORPG및 유사장르가 절대로 MMORPG수준의 가상세계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이유중 한가지가 된다. MORPG의 모든 컨텐츠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존재한다. 대부분의 MORPG에서는 가상 세계속의 원하는 곳을 자유롭게 마음 것 뛰어다닐 수 없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며 배경을 변화 시키지도, 날씨가 변하지도 않는다.

    게임의 미래와 관련된 또 다른 분야는 ‘퍼시스턴트’ 게임(Persistaent Gaiming)이다. ~ 대부분의 게임은 콘솔을 끄고 난 뒤 중단되고 만다. 그리고 게임의 세계는 플레이어가 그것에 개입하기로 작정하는 한에서만 구성될 수 있다. 하지만 퍼시스턴트 게임의 세계는 영속한다. 마찬가지로 그것의 시뮬레이션은 게이머의 개입과 관계 없이 작동을 계속한다.

    개인적으로 무척 관심 있는 분야이다. 언젠가는 이러한 관점이 깊이 녹아있는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