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중요한 일을 먼저 하고, 작은 일을 나중에 해라. 일정 관리에서 무척이나 유명한 원칙이다. 이 이론은 개인의 시간을 항아리로, 일들을 돌과 모래로 비유하여 아주 적절하게 설명했다. 모래, 작은돌, 큰돌의 순서로 채우는 것 보다, 큰돌, 작은돌, 모래의 순서로 채우는 것이 더 많이 들어간다. 엄청나게 단순하면서도 눈에 잘 보이는 훌륭한 비유이다. 게다가, 이것이 단순히 말로만 묘사되는 게 아니라, 실제 강연에서 청중을 뽑아서 실제 사물로 (정말 돌은 아니고, 크고 작은 공과 구슬) 시연을 하기도 한다. 한번 본 사람은 절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같은 양의 공과 구슬들을 속이 보이는 투명한 통에 붓는데, 그 순서에 따라 다 들어가기도 하고 들어가지 못하기도 한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다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적어보겠다. 얼마 전, 집에 설겆이가 잔뜩 밀린 미증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당연하지만, 이것은 진냥마님의 실책은 아니다. 당시, 마님은 시험과 레포트에 전념하느라, 이외의 활동을 본인에게 위임한 상태였다. 하지만, 매일 야근하고, 야근 안 하는 날은 스터디 하는 게임 회사 기획자에게, 기존에 맡고 있던 살림에 추가하여 식재료 수급과 요리와 뒷정리까지 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적 압박이었다. 당연하게도 먹기까지는 잘 먹었는데, 설거지가 누적되어 버렸다.) 싱크에 그릇이 가득 담긴 상황에서 설겆이를 할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아래쪽에 끼워져 있던 큰 냄비, 팬, 보울 위주로 빼서 옆에 쌓아뒀는데… 어라? 빼낸 부피는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싱크의 그릇의 총 부피가 반이나 줄어있는 게 아닌가? 큰 것은 큰 것대로 모으고 작은 것은 작은 것 대로 모으면 총 부피가 줄다니! 놀라운 발견이다. 나도 이것으로 시간 관리 세미나를 해볼까? ‘기존 방식은 틀렸습니다. 여기 그릇들을 보십시오. 큰 것은 큰 것끼리 모았더니, 같은 공간에 더 많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큰 일을 먼저 하냐, 나중에 하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큰 일은 큰 일끼리. 작은 일은 작은 일끼리 모아서 하는 것이 포인트 입니다.’ 마지막 내용은 그냥 웃어보자고 쓴 글이다. 설마, 저 알량한 이야기로 세미나를 한다면 누가 들으러 오기나 할까.
여기서 다시 짚어보지만, 이 이야기의 주제는 비유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샌 것 같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것은 주제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시간 관리는 주제가 아니다.
비유는 좋은 것이다. 어렵고 복잡한 것. 쉽게 와 닿지 않는 것을 이해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다. 또, 적절한 비유는 설득력을 향상시켜 주는데도 일조한다. 게다가, 비유를 하는 과정에서 추상화를 하여 생각을 가다듬을 수도 있고, 비유를 한 대상을 통해 원래의 생각을 다시 보며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 비유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놀라운 생각의 기술 중 하나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비유는 어떻게든 정보를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비유를 하기 시작하는 순간, 본질이 가리워 지기 시작한다. 위의 시간 관리의 비유를 예로 들어 보자. 정말 큰 돌을 먼저 넣고 작은 돌을 넣고 모래를 넣으면 더 많이 들어가는가? 큰 그릇은 큰 그릇끼리 모으고, 작은 그릇은 작은 그릇끼리 모으면 더 많이 들어가는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기지? 아, 돌의 모양인가? 돌의 모양과 그릇의 모양이 달라서 그러나? 아니면 큰 돌이 쌓였을 때, 그 사이의 공간이 작은 돌이 들어갈 만큼 작아서 그런가? 이런 생각이 시작된 순간, 이미 논점은 일탈된 것이다. 큰 돌이든, 작은 돌이든. 그릇이든 뭐든 간에 그것이 시간 관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것을 무언가에 비유했을 때, 사람들은 각기 다른 것을 생각할 가능성이 생겨난다. 그래서, 논점이 비유의 대상으로 옮겨가는 순간, 논쟁이 언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기획자는 비유를 잘 알아야 한다. 잘 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단점도 알아야 한다. 이야기를 하다가 비유가 시작되더라도 본질을 계속 꿰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유를 이야기를 교묘하게 이끌어 나가 상대의 판단력을 흐리게 해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해야 한다. 본인은 적어도 개발팀 내부에서는 기획 내용은 진실함만 남아 있으며, 철저히 이성적으로 시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s. 설겆이 하다 말고, 이런 생각이 나서 꽤 기분이 좋아졌다. 생각이 달아나지 않게 후딱 고무장갑 벗어 놓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 노트북을 펴서 마인드 맵에 생각들을 적으면서… 스트리킹의 선두주자(?) 아르키미데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