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MMORPG를 보는 한가지 관점 : 서사와 규칙

게임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론이 있다. 게임은 소설, 만화, 영화의 뒤를 이어가는 서사(내러티브)를 위한 매체이며, 이야기를 플레이어에게 전달해 주고 그 이야기를 통해 감흥을 주는 도구라는 주장이다.

이 이론은 어드벤쳐나 RPG등의 게임에 잘 적용된다. 파이날 판타지의 감동, 바이오 해저드의 공포 등 이러한 게임을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의 느낌은 다른 매체와는 사뭇 다르고, 때로는 더욱 크고 깊다. 이와 같은 게임은 서사가 중심이 되는 게임이다. 게임을 통해 이야기가 전달되고, 그 이야기를 통해 감흥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게임도 있다. 스포츠, 퍼즐, 액션게임들은 시나리오가 없는 경우가 많다. 있다 하더라도 짧은 배경 스토리나 캐릭터 설정 정도이다. 이러한 장르의 게임을 이야기를 즐기기 위해 즐기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고아들을 위해 싸우는 킹의 감격적인 스토리를 보고 싶어!” 라며 철권을 플레이 하는 유저가 있을까? 철권과 같은 대전 액션 게임이라면, 어떠한 시스템 위에서 어떤 캐릭터들을 가지고 어떠한 기술을 주고 받으며 싸울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러한 게임은 규칙이 중심이 된 게임이다. 정해진 규칙에 따르며, 상대방을 이기거나 더 높은 기록을 세우기 위해, 머리를 쓰거나 손을 재빨리 움직인다.

대부분의 게임은 이야기와 규칙이 공존한다. 무엇이 주가 되고, 무엇이 부가 되느냐. 그 비중이 어떻게 되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게임에서 규칙과 시나리오는 공존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둘이 엮여 시너지 효과를 내야지 재미있는 게임이 된다.
아무리 스토리가 재미있는 RPG라고 해도 전투가 단조롭거나 밸런스가 잘 안 맞을 경우 게임 전체의 재미는 반감한다. 반대로, 단순히 쏘고 부수는 슈팅게임이라 하더라도 세계관이 독특하고 그 속에서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면, 게임의 재미는 배가된다.
하지만 주와 부가 뒤바뀌어서는 안 된다. 게임의 장르와 컨셉에 따라 무엇이 중요한지는 확실하게 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MMORPG는 어떨까? MMORPG에서 서사와 규칙에 대해 살펴보자.

MMORPG의 규칙은 각 게임마다 크고 작게 다르다. 하지만 핵심이 되는 부분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1. 행동을 통해 보상을 얻고 캐릭터를 성장시킨다.
  2. 다른 플레이어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과 협동, 경쟁 한다.

첫 번째 항목은 상당히 많은 게임과 공유된다. 대부분의 RPG게임, 일부 액션 게임들이 이런 규칙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항목은 멀티플레이게임의 특징이다. 같은 게임 공간에 존재하는 다른 플레이어는, CPU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적자부터 가상 사회를 이룰 수 있는 동료까지 될 수 있다. 본래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마주보거나 둘러앉아 진행하던 놀이에서, 컴퓨터 게임으로 바뀌면서 다른 사람이 배제된 놀이로 변화한 것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은 것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은 단순한 규칙의 놀이를 반복해도 쉽게 질리지 않으며, 규칙 속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네트워크이라는 커다란 제약사항이 존재하지만, MMORPG는 엄청난 특성을 기반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게임이 거듭하여 나올수록 시스템적으로 많은 발전을 하였다. 다른 게임에서 찾기 힘든 즐거움이 생겨났으며, 점차 다양해 지고 있다.

MMORPG의 서사는 어떨까?

MMORPG에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거의)유일한 이야기 전달 수단은 퀘스트이다. 그렇다면 그 퀘스트를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는 유저에게 충분한 만족과 즐거움을 줄까? 긍정하기 힘들다.

MMORPG의 퀘스트는 표현할 수 있는 연출이 너무 적다. MMORPG에서 유저의 행동에 따른 피드백이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MMORPG의 세계는 대부분의 공간을 다른 플레이어와 공유한다. 때문에 플레이어 한 명의 행동으로 그 공간이 변화될 수 없다. 그것이 다른 플레이어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어떠한 행동을 해도 시간을 진행시킬 수 없다. 모든 유저가 같은 시간 속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마왕을 무찔러 왕국에 평화를 가져오고 공주를 구해낼 수 없게 되어버린다.

게다가, 이야기의 관점도 문제가 된다.  플레이어의 아바타인 캐릭터가 이야기에 중심이 되지 못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한다. 플레이어가 불특정 다수이며, 구체화 시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 속에 깊이 개입시키기 힘들다. 성별, 종족, 성격 등 수많은 차이점이 존재하는 플레이어들을 모두 어느 왕국의 왕자로 만들어 줄 수는 없다. 어진 성격의 왕자일 수도 있고, 다혈질의 왕자도 일 수도 있는데 어느 캐릭터에 맞춰서 이야기를 해 줘야 할지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야기는 NPC와 NPC사이에 서만 존재하게 되며, 플레이어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무언가 행동을 하는 심부름꾼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 다른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아바타가 이야기의 주체인 것과는 큰 차이가 있으며 결과적으로 이야기는 플레이어와 거리가 멀어진다.

물론 위와 같은 제약사항을 가지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아무것도 없는 배경에, 배우 두 명만 나오는 연극도 재미있을 수 있는 법. 하지만 MMORPG에서는 이러한 것 역시 노리기가 힘들다.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NPC의 캐릭터성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MMORPG에서 퀘스트를 주는 수많은 NPC중에 이름이 기억나는 NPC는 몇 명이나 될까? 그들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고, 어떤 문제를 만났고, 어떻게 극복했는가? 이러한 정보를 게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우리가 NPC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퀘스트를 진행하는 순간, NPC가 해주는 대사뿐이다.

결과적으로, MMORPG의 퀘스트는 좋은 서사의 수단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유저들도 MMORPG를 플레이 하면서, 퀘스트에서 서사적 즐거움을 기대하지 않는다. MMORPG에서 시나리오를 보고 감동하기 위해 퀘스트를 진행하는 유저가 몇 명이나 될까? 대사는 엄청나게 많고 이야기도 뛰어나고 연출도 멋지지만, 보상이 없고 게임 진행에 필수도 아닌 퀘스트가 있다고 해보자. 과연 몇 명의 유저가 그 퀘스트를 할까?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MMORPG에서 퀘스트는 여전히 필요하다. 퀘스트가 부족하다면 유저들은 게임의 퀄리티가 낮다, 완성도가 떨어진다, 컨텐츠가 부족하다 등 불만을 표현한다. 이야기를 보고 즐기는 유저가 많지 않은데, 왜 많은 유저들이 퀘스트가 왜 필요하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퀘스트가 이야기의 전달이 아닌, 또 다른 기능도 하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목적과 보상이다. MMORPG에서 퀘스트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은 “어떤 행동을 하면 어떤 보상을 준다.” 라는 것이다. 즉, 유저들에게 어떤 행동을 하라는 목적을 제시해 주며, 동시에 보상을 주는 것이다. 일반적인 게임의 목적과 보상으로 존재하는 엔딩이 없는 MMORPG에서, 퀘스트는 작지만 손에 잡히는 목적과 보상을 준다.

또한 퀘스트의 이야기는 게임의 설정과 분위기를 전달해준다. 퀘스트를 통해 유저에게 전달되는 각종 설정은 MMORPG의 느낌을 더 좋게 해준다. 게임성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는 뜻이다.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 것이지?”, “저 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 던젼은 누가 만든 것이지?” 유저들의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해주면서 몰입감을 높여 게임을 더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퀘스트의 기능은 유저의 행동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유저를 보상으로 유인하여 제작자의 의도대로 행동을 하게 만들 수 있다. 새로운 지역에 가보게 만들고, 새로운 행동을 하거나 새로운 적을 사냥하게 한다. 더 많은 게임 컨텐츠를 둘러보게 하는 셈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유저는 제작된 게임의 구석 구석을 알게 되고, 또한 게임의 특징도 체험하게 된다.

아울러 캐릭터들의 격차를 줄여 준다. 퀘스트를 통해 배포되는 아이템은 거의 고정적이며, 유저의 운과 플레이 시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때문에 라이트 유저도 퀘스트만 잘 수행하면, 일정 수준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최소한의 수준으로 자신의 캐릭터랄 무장시켜 게임을 지속시켜 나갈 수 있게 해준다.

한 마디의 말로 모든 MMORPG의 특성을 정리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대다수의 MMORPG의 모습은, 이야기를 전달하여 즐거움을 주는 게임이라기 보다 규칙을 제시하고 그 규칙 안에서 게임을 진행하면서 즐거움을 얻는 게임에 가깝다.

규칙이 중심이 되는 게임을 만들 경우, 규칙이 체계적이며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퀘스트는 그 규칙을 최대한 매끄럽게 하는 역할임을 인지하여 그 기능을 명확하게 하도록 제작되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의 전달이 중심이 되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MMORPG에서 보여지고 있는 퀘스트의 한계를 인지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고안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비노기는 좋은 예가 된다. 평면적인 NPC를 탈피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 – 친밀도에 따른 대화 시스템. 퀘스트 진행 도중, 주요 전투나 대화의 경우, 다른 플레이어와 시간, 공간적인 연속성이 적은 인스턴트 던젼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연출 효과를 높였다는 점. 그리고 플레이어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캐릭터를 직접 조정할 수 있는 RP던젼. 이러한 도구들이 기존 MMORPG를 보다 즐겁고, 심도 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미리 작성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려주는 기존 게임의 전달방법뿐만이 아니라, MMORPG에서만 가능한, 참여하는 이야기 전달법도 지속적으로 연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많은 MMORPG플레이어들이, 오랜 시간 게임을 하면서 자신만의 경험담을 만들어 가고 있다.

기획자이기 전에 한 명의 유저로서, 과거의 성공한 게임을 벤치 마크하여 약간의 개선 후, 포장만 예쁘게 하여 만들어진 게임이 이제는 그만 나왔으면 한다. 한번만이라도, 만들고 있는 게임이 과연 어떤 즐거움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개발하고 있는 도구와 규칙들이 그 목표를 잘 전달할 수 있는가를 고려해 주길 바란다.

[칼럼] MMORPG를 보는 한가지 관점 : 서사와 규칙”에 대한 1개의 생각

  1. 타키온님 이야기 전달 수단이 퀘스트밖에 없는건 아닌데요 NPC의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보여주는 것이 가능하고 그냥 일상적인 말만으로도 알려줄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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