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처음 소개할 책인 Game Architecture and Design는 개인적으로 의미 깊은 책이다. 이 책은 나에게 아마추어를 막 벗어나려는 시기부터 몇 년간 항상 옆에 끼고 항시 참조했던 교과서 같은 책으로, 게임 디자이너로서 자리를 잡는데 큰 도움을 준 책이다. 출시된 지는 꽤 지났지만, 지금 보아도 그 가치는 떨어지지 않았으며, 초심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
모든 시대의 예술가들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생각과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창조적인 작업이란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여러 출처로부터 조금씩 빌어온 아이디어를 새롭게 조합하여 새로운 작품으로 엮어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완전히 새로운 발상을 얻고 싶다면 남들이 좀처럼 하지 않았던 일을 해야 한다.
초기의 영화감독들은 새로운 영상 매체의 가능성 때문에 매우 들떠 있었다. 그들은 스크린에 담아내기 위해 다양한 분야로부터 가리지 않고 영감을 얻어냈다. 오늘날 팀 버튼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독인 표현주의의 계보는 동화, 연극 그리고 프로이드 심리학의 요소들을 조합하고 있다. ~ 스터워즈는 뮤지컬 드라마에 텔레비젼용 연속극을 혼합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영화 감독들은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아이디어를 긁어 모아서 좋은 결과를 얻고 있지만대부분의 게임디자이너들은 그렇게까지 모험적이지 못했다.
세계 제일의 게임 크리에이터인 미야모토 시게루는 인생 속의 여러 가지 경험, 취미 등에서 발견한 재미 요소들을 통해 게임의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어릴적 동산을 뛰어다니던 경험이 젤다를 만들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며, 최근 NDS로 출시해 큰 성공을 거둔 닌텐독스 역시 가족들과 강아지를 키운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이러한 미야모토 시게루의 개발 방식 때문에 닌텐도에서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취미와 최근 관심사를 ‘기업적 비밀’로 다루고 있다고 한다.) 윌라이트는 집이 불타버린 후, 새 집에 가구들을 채워 넣는 과정에서 심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다른 분야에서도 이와 비슷한 조언은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건담의 아버지인 토미노 요시유키는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애니메이션만 좋아하면 오타쿠가 될뿐, 좋은 애니메이터가 될 수 없다고 조언하고 있다. 토미노 요시유키는 다양한 인생경험을 하면서 다른 이에게 전하고 싶은 것을 찾은 뒤, 만들고 싶은 것에 그 경험을 투영하라고 이야기 한다.
현재 존재하는 게임들을 많이, 깊게 즐기는 것도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과 지식만으로 만들어진 게임은 충분한 독창성을가지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한다.
발상의 전환해서 생각을 해보라, 도대체 ‘게임’일 필요가 뭐가 있는가? ~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 진짜 게임이야’가 아니라 ‘이것 진짜 재미있어!’인 것이다.
때로는 ‘게임’을 만든다는 생각 조차 게임을 만드는 창조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물론 ‘재미있는 것은 다 좋다.’ 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지만 게임이 아닌 것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를 잘 이해하고 분석한다면 재미있는 게임을 위한 영감이나, 소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적인 과정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그런 식으로 해서 잘 만들어진 유일하게 쓸모 있는 결과물은 미국 헌법 정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게임은 프로듀서 / 디랙터의 전적인 지휘를 통해 개발되는 방식, 이른바 철인주의를 지지한다. 프로듀서나 디랙터가 아닌 어떤 개발자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토론에 참여하고,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평가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프로듀서 / 디랙터의 몫이다. 물론 이것은 프로듀서 / 디랙터가 모든 게임 디자인을 다하고, 다른 게임 디자이너들은 서포트만 하라는 뜻이 아니다. 게임의 전체를 생각하는 프로듀서 / 디랙터가 디자인하고 결정할 부분과 게임의 부분 부분을 책임지고 디자인할 부분은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기획자 노트
기획자 노트는 기획서를 구상하는 동안 머리에서 굴러다닌 많은 생각들에 대해서 써 내려간 문서이다. ~ 게임 기획서의 한 문장은 많은 시간 동안의 심사숙고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나중에 ‘무엇이다’라는 것은 기억 할 수 있어도 ‘왜’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중요한 내용이다. 어떤 요소를 디자인 하고 게임에 반영을 한 뒤 게임을 플레이 해 보았을 때, 의도와 다르게 나오는 것은 게임을 개발하면서 마주할 수 있는 흔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디자인 문서를 다시 검토하고 가설을 검토하고 문제를 찾아야 하는데, 이럴 때 ‘어떻게’ 생각해서 이런 결과를 얻었는지 그 이유와 생각의 과정을 알 수 있다면 다시 디자인하는데 훨씬 수월하게 된다.
가장 최근의 게임 개발 방식에 대한 생각은 반복적인(iterative)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개발에 있어 몇몇 나선형 개발 방법을 따르면 불투명한 전망도 위험도 적당한 수준으로 맞출 수 있다.
이 문장을 읽고,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반복적 개발 방법, 나선형 개발 방법론은 “애자일” 개발론의 핵심 키워드이다. 애자일 개발 방법론이 개발자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개발 프로세스에 적용되기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물론 이 책은 오래된 책이다.
구성요소의 비순차적 관계에서 기본형식은 수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5개의 요소로 구성되는 관계를 설정했는데 나중에 1개의 요소를 뺀다면 그 관계설정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 반면에 개발 중에 구성요소를 추가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추가되는 구성요소가 다른 요소들과 대칭구조를 이룰 필요가 없다. ~ 여기서 교훈은 명백하다. 게임 디자인의 규모를 결정할 때 되도록 하향조정하라.
가위, 바위, 보에서 ‘가위’와 ‘바위’만 개발한 뒤, 스케줄의 문제로 ‘보’가 개발되 전에 게임을 출시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허구에 대한 자발적인 믿음 (Suspension of disbelief)
스토리는 납덩어리를 금으로 바꾸어주는 현자의 돌이기도 하다. 모양새를 꾸미는 작업은 몰입감 높은 게임 분위기를 형성하여 허구를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별로 허구를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즉 설득력 있는 스토리가 없다면 아무리 모양새가 화려해도 소용없다.
허구에 대한 자발적인 믿음. 기억해둘 만한 키워드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말하는 현장감(be there)과 큰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기술이 필요한 게임은 만들지 말라. ~ 누군가 시도했다가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기술도 마찬가지다. 연구개발이라는 것을 개발의 일부로 착각하지 말도록 하자.
(게임) 내러티브–특히 대사–의 경우에는 쓰고 싶은 메시지를 다 적은 다음에, 쳐내고 쳐내고 또 쳐내서 극한으로 줄였을 때에도 전달되는 정보의 양은 여전히 똑같게 하라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게임 디자인의 경우에는 저런 원칙을 세울 수 있군요. 근데 사실 중간에 기능 추가하는 것도 어려워요… ;_;
뭐든 쉬운게 있겠습니까만은, 하기 어려운 것을 해 내는 것이 큰 즐거움중 하나가 아닐까요? ^^;
“이것 진짜 재미있어”를 먼저 생각해야 되는 군요. 게임뿐만 아니라 소설이든 영화든 모든 창조적인 일에는 다 적용되는 진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에서 시작을 해야겠지요. 형식은 그 다음이구요.
다른 이야기인데… 나선형 개발은 사실 20년전에도 이야기되어지던 이론입니다. 그게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은 2000년 들어와서지만요 ^^
정말 기본적인 것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되어서 그런지, 잊혀지기가 쉽더군요. 그래서 이런 것을 상기시켜주는 책이 좋습니다.^^
나선형 개발이론이 20년이 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더 시야를 넓히고, 많은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는 것이 없어, 정보를 보고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일을 줄이고 싶네요.
한번 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