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

이 책은 페르시안님의 블로그를 보고 읽게 된 책으로, 한마디로 이야기 하자면 : 쉽지 않다. 이 책은 게임학에 대한 논문과 에세이를 모은 책으로,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게임이 아닌, 게임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한술 더 떠서 파트 1인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비디오게임”은 게임학뿐만 아니라 “대안연극”에 대한 배경지식도 필요하다. 이쯤 되면 글자를 읽고도 읽은 게 아닌 꼴이 되어 버린다. 어찌 되었든 평소에 주워 들은 잡다한 지식과 오기로 책을 끝냈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을 다시 평가하자면, ‘게임학과 담을 쌓을 것이 아니라면 한번쯤 읽어 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파트 1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 넘기고 파트2와 8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부록 – 용어 설명 – 만 읽어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파트2는 ‘컴퓨터 게임의 사회적 상상력’으로, 저자인 프라스카의 게임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 있는 여러 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저자인 프라스카는 게임에 대한 학문적 접근 방법중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서사학Narratology이 아닌, 그와 대치하는 것처럼 보이는(하지만 실제로는 한번도 대치된 적 없는) 게임학Ludology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게임을 서사보다는 시스템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MMORPG를 Persistence world를 기반으로 하는 전투 시뮬레이터로 바라보는 시스템 디자이너인 나에겐 많은 공감점이 있었다.

어떻게 본다면 상아탑에 가까운 학문인 게임학이, 현실에서 게임을 만들고 있는 게임 디자이너에게 의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프라스카의 생각은 확실히 그렇게 작용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프라스카의 활동의 폭 넓음 – 이론적인 게임학자부터 게임 디자이너이자 사업가 –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책이 출간되고, 번역되어 국내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하고 싶다. 특히 번역을 하신 김겸섭님께 박수를 쳐 드리며(번역의 아쉬움은 뒤로 하고), 그가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 책을 기대해 본다. 이 책의 가장 영양가 있는 부분 중 하나는 80여 페이지에 달하는 용어 설명이다. 그 동안 이런 저런 책을 보면서 주워 담은 지식들이 이 책의 용어 설명을 보면서 하나로 맞춰졌다.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이 부분은 번역이 아니고 역자가 직접 정리하였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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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 도서관 만세! 구매 신청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구비해 주었다.

2.1 시뮬레이션 101

    시뮬레이션은 새로운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장난감들이나 게임과 같은 일상적인 것들을 통해 늘 존재해 왔고 또한 과학적 모델이나 역경易經과 같은 사이버텍스트들을 통해서도 존재해 왔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의 잠재력은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어느 정도 제한되어 왔다. 즉 톱니바퀴를 통해 복잡한 시스템을 모델화하기란 극도로 복잡한 일인 것이다. 물론 컴퓨터의 발명은 이러한 상황을 바꿔놓았다.
우리는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시뮬레이션을 새로운 미개척 영역들로 추진할 수 있는 도구들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시뮬레이션은 과거의 방식으로는 다루기가 너무 복잡했던 시스템들을 모델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이 세계를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으로서 재현과 내러티브에 대한 강력한 대한을 가지게 되었다.

컴퓨터 기술을 개발시키고, 게임의 근원을 만들어 낸 전쟁을 생각해 보자.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작전을 수립하는데 시뮬레이션을 이용했다. 지도와 말을 이용한 시뮬레이션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수 천 년간 이런 단순한 시뮬레이션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아 왔다. 그리고 근래 수 십 년 동안 발전해온 컴퓨터 기술은 시뮬레이션의 수준을 급격하게 향상시킨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부의 기원을 보면 설탕 섬 시뮬레이션이 나온다. 아주 단순화된 월드와 아주 간결한 AI를 가진 개체들로 만든 이 시뮬레이션은 오랜 기간 아무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정설로만 믿어오던 보이지 않는 손의 부재를 증명해 내었다.
왜 게임을 이야기 하는데 시뮬레이션 이야기를 하는가? 게임은 재미있는 시뮬레이션이다. 복잡한 규칙과 계산 등은 컴퓨터에게 맡기고, 플레이어들은 의미 있는 선택을 하며 결과를 즐긴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2.2 시뮬레이션 vs 내러티브

    인터랙티브 내러티브의 가장 큰 허위(기만성)는 그것이 내러티브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플레이어에게 자유를 주는 척한다는 것이다.

2.6 에이전시와 몰입을 다시 생각하다.

내러티브가 묘사에 관한 것이라면, 시뮬레이션은 입법에 관한 문제이다.

그리고 게임이라는 세계의 입법관은 게임 디자이너다.

    게임 디자이너 플롬Fullop은 이렇게 제안한다. “당산이 어떤 게임을 만 번만 플레이 해보면 그래픽은 보이지 않게 된다. 그것이 정말 충동이다. 플롯, 캐릭터, 스토리를 가공하는 것은 당신의 뇌의 일부가 아니다. 만일 당신이 영화를 본다면 당신은 영웅이 된다. 아이들은 말한다. 나는 그것이기를 원한다고. 하지만 게임에서 마리오는 영웅이 아니다. 나는 그이고 싶지 않다. 그는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마리오는 하나의 커서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인 서사론을 보자면, 좋은 이야기를 위해서 주인공 캐릭터는 입체적일 필요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게임의 주인공들은 입체적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캐릭터가 단순하고 보편적일수록 몰입과 이입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전에 소개한 “비디오 게임“에서 이 내용이 자세히 다루어져 있다.)

불신의 자발적 중지 willing suspension of disbelief

최근에 여기저기서 보여지고 있는 키워드이다. 사용자는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이것은 허구지만, 허구라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겠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 게임을 하나의 세계로 받아들이고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 “왜 MMO는 가상세계로 받아들여지지만 MO는 하나의 게임으로만 받아들여지는가?” 의 답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2.8 시뮬레이션 범죄 도시

    <GTA3>과 <셴무>를 비교하기란 쉬운 일이다. 둘 다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싱글 플레이어 게임들이고, 둘 모두 높은 자유도를 약속한다. 주된 차이라면 <GTA3>의 경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셴무>는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나는 GTA의 성공에 비교하여, 셴무의 실패 이유를 수년간 궁금해 해 왔다. 유감스럽게도 이 궁금증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계속 궁금증으로만 남아 있었다. 일단, 주변에 셴무를 재대로 플레이 해본 사람이 없었고, 직접 해보기엔 언어의 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Dreamcast를 구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이 글은 수 년 간 궁금증으로만 있었던 두 게임의 비교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 (<셴무>의) 환경은 화려하면서도 광대하다. 하지만 나는 거리를 통과해 걷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려고 노력하는 일에 쉽게 지루해지고 말았다. 나는 늘 동일한 답변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저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기 위해 거의 모든 문을 노크해야 하는 것도 그렇다. 내가 결코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왜 디자이너는 나에게 문의 노크를 허용한 것일까? (노크한 뒤 열릴 수 있는 몇몇 문들이 <셴무>에 존재한다.)

사람을 보면 말을 건다. 일본 RPG로 게임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다. 전통적인 많은 RPG에서 NPC와의 대화는 좋은 효과를 가져 왔다. 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귀찮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보아야 한다. 물론, 귀찮음을 이기고 노력을 투자함으로써 얻어지는 게임의 즐거움도 있다. 하지만, 최근 많은 게임들의 추세는 귀찮고 재미 없는 부분을 최소화 하고 재미있는 부분을 더 많이 즐길 수 있을 수 있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가 어디로 가야 다음 이야기를 진행하는지 알기 위해 몇명의 NPC에게 대화를 시도해야 하는 게임과, 지도만 열면 바로 목적지를 알 수 있는 게임을 비교하여 생각해 보자. 무엇이 보존해야 하는 핵심 즐거움이고, 무엇이 걷어내도 되는 부가적인 즐거움인가.

    공간은 비디오 게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 모든 어드벤쳐게임 혹은 1인칭 슈팅게임의 플레이어는 그 파란 열쇠를 얻기 위해 그들이 세상의 다른 끝으로 (다시)되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을 때의 좌절감을 안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시간 낭비다. 만일 플레이어가 길을 잃어버린다면 이 역시 낭비 중의 낭비다. 하지만 복잡한 환경을 가진 비디오게임의 경우 이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당신이 게임디자이너의 심부름꾼 노릇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정말 재미없는 일일 것이다. 거대한 세계들로 이루어진 게임들 대부분은 이러한 심부름꾼 신드롬에 관한 한 유죄이다. 하지만 나는 <GTA3>의 경우 예외이고 바로 이 점이 적어도 그 게임 성공의 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동수단의 활용 기능(teleporting)이 주어져 있지 않을 경우 대부분의 게임들은 플레이어들에게 목표물을 향해 그저 걷거나 뛰도록 강요한다.
~ 당신이 Liberty City의 다른 쪽으로 갈 필요가 있을 때, 당신은 당신의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실제로 그것을 즐기게 될 테니까 말이다. 이동 수단들은 재미있다. 즉 당신은 훌륭한 자동차를 강탈한 다음 당신 기분에 맞춰 그것을 운전한다. ~ <GTA3>의 운전은 게임 그 자체이다.
~ <GTA3>의 특별한 디자인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전통적으로 지루한 활동(공간 이동)을 재미나는 게임(자동차 시뮬레이션)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샌드박스 게임을 이야기 할 때 GTA를 언급한다. 하지만, 심즈와 비교해 본다면 GTA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의외로, 상당히 적다. GTA의 자유도와 시스템의 풍부함의 많은 부분은 한쪽에 쏠려 있다. 폭력과 무기 사용? 아니다. 바로 차다. 도둑질, 택시, 포주, 환자 이송, 범죄자 잡기. 모두 기능을 가진 차를 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애당초, GTA라는 제목 자체가 “위대한 차 도둑”이 아니던가. GTA에서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은 그 자체로도 많은 만족감과 즐거움을 준다.

    <GTA3>은 (컷신을 제외한)일체의 언어적 인터랙션을 포기함으로써 훌륭한 게임 경험을 제공한다. 당신은 NPC들에게 같은 답변을 얻어낼 수 없을 것인데, 왜냐하면 당신이 NPC들에게 질분을 던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당신은 폭력적인 세계의 폭력적인 주인공을 조종한다. 따라서 타협의 여지는 없다. 자동차 충돌, 야구 배트들과 강속구 투수(라고 책에는 번역이 되어 있지만, 원문을 보면 flamethrower이다.)들은 지금 이 세계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이다. 당신은 NPC들과 대화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결코 불만을 갖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즉 그들이 함께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들을 죽이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 확실히 액션스타들은 잡담 한마디 없이도 닥친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다.
<셴무>는 보다 높은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을 목표로 했다. 그 게임의 NPC들은 매력적이었고, 당신이 그것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을 수 없다고 느꼈을 정도였다(당신이 찾기로 되어 있는 미스터리 검정색 자가용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내기 위해 당신이 그 NPC들과 실제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사실만 빼고 말이다.) 그런데 정확히 이는 <셴무>가 참패한 이유이다. 나는 <셴무>의 NPC들보다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 능력들을 가진 햄스터들을 본 적이 있다. <GTA3>의 두 번째 중요한 디자인적 성취는 바로 이 점에 있다. 즉 그 어떤 언어적 커뮤니케이션 형식 없이도 게임의 실제적인 실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주요 캐릭터와 세계 둘 모두를 창조하고 있다는 점 말이다. <셴무>의 NPC들이 나누는 대화들의 경우 너무 제한적인 것이어서 계속 몰입을 방해한다. 즉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이 로봇을 다루고 있음을 계속 상기하고 있는 것이다. <GTA3>에 이야기하는 인형들이 없다는 사실은 플레이어들이 행동에 포커스를 맞추도록 해준다. 물론 이는 NPC캐릭터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박탈하는 것이고 그들을 대상화하는 것이기도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생각하면 대부분 대화를 떠올린다. 하지만 GTA의 커뮤니케이션은 정말 GTA스럽다. (주먹다짐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짚어 낸 작가의 통찰력에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또한 정말 멋진 영웅은 잡담 한마디 없이도 닥친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도 대 동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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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면에서 꼽을 수 있는 최고의 영웅은 토탈리콜의 아놀드 슈와츠제네거다. 그는 어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잡담 한마디 하지 않고(괴성은 조금 질렀지만), 스스로의 근력만으로 위기를 탈출했다.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게임들을 플레이 하고 살펴보고 있으면 특이한 경향을 볼 수 있다. 서양의 온라인 게임들 – UO, EQ, DAoC, WOW – 들은 NPC를 위한 리소스가 사용된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고귀한 몇몇 NPC들은 그들만의 매쉬와 텍스쳐로 특별 대우를 받고 있지만, 대부분의 NPC들은 플레이어를 위해 만들어 둔 모델링과 텍스쳐를 조합하여 만들어 진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온라인 게임들은 반대인 경향이 있다. 거의 모든 NPC들이 고유의 디자인, 모델링, 텍스쳐, 애니메이션, 심지어 목소리까지 가진다. 플레이어도 가지지 못한(!) 것들을 말이다. GTA의 NPC들은 정말 볼품없다. 서양의 MMORPG처럼 말이다. 반면 셴무의 NPC들은 많은 리소스를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사실 그들이 가져야 할 것은 그럴듯한 대화 능력인데 말이다.

    내가 말했다시피 <GTA3>와 <셴무>는 모두 스토리를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그것들이 스토리들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스토리텔링은 게임에서 몇몇 역할들을 수행한다. 그것은 주로 게임에 일련의 규칙과 가치들을 제공함으로써 게임의 설정에 “토대를 제공한다.” 범죄 지하세계라는 내러티브적 설정은 엄청난 양의 “상식적인”장르 데이터를 제공한다. 그 데이터를 교육용 소책자에 기술하기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를 테면 그런 데이터는 “오페라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아마 마피아일 것이다”, “총알은 상처를 입힐 것이다”와 같은 사실이 포함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덧붙여, 내러티브적 설정은 또한 Roleplaying요소를 개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게임에서 내러티브는 목적일 수도 있고, 수단일 수도 있다. 온라인 게임이 전투 시뮬레이션을 벗어나, 하나의 세계로 인지되는 데에는 퀘스트와 각종 텍스트가 큰 역할을 한다. 설정된 가상세계의 특징과 가치관들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이 세계의 상식은 무엇인가? 이 세계의 구성원들의 가치관은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것의 전달을 배제한 체 ‘이야기’의 전달만 신경 쓴다면 그 온라인 게임은 게임 이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내 머릿속에서는 아직도 알비온은 “얼간이”이고 미드가르드는 “야만인”이며, 나는 호드를 위하여 싸워야 한다.

    <GTA3>의 도드라진 특징 중 하나는 당신이 지하세계를 통과해 나가는 과정을 선형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확실히 약간의 선형성은 존재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당신은 다양한 보스들에게서 일거리를 받을 수 있고, 당신이 어떤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대개 그것은 큰 일이 아니다. ~ 이는 틀림없이 오늘날의 비디오 게임 세계를 고려할때 이례적인 일이다. 당신이 <GTA3>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주요한 재미는 범죄의 시뮬레이션에 있지, 여자를 꼬이거나 Liberty City의 새로운 명사가 되는 것 따위의 헐리우드식 엔딩을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GTA가 샌드박스형 게임으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플레이어가 얼마나 다양한 것을 할 수 있느냐’ 가 아닌 것 같다.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 중 무엇을 해도 된다.’ 가 그 이유는 아닐까?

    게임들이 누에고치 속에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개척적인 게임들은 늘 이전의 게임들에 어떤 빚을 지고 있다. 가끔은 새로운 게임들 내에 상이한 조합들을 이루고 있는 원형게임들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유용한 일일 수 있다.

게임의 표현형을 벗겨내고, 그 재미의 본질을 살펴보자.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2.9 할머니는 트롤들보다 쿨하다.

    윌라이트는 몇몇 인터뷰들을 통해 자신의 주요 디자인 전략이 맥클라우드(Scott McCloud)의 만화의 이해에 영향을 받은 것임을 언급했다. 특히 독자가 삽화화된 이야기의 각 그림 사이에 있는 틈새들을 어떻게 채워나가는가를 설명하고 있는 부분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고백이 있다. 이 때문에 심즈는 횡설수설 말하고, 어휘보다는 아이콘을 이용해서 꿈꾸고 대화하려 한다. 인간의 삶과 언어를 충실하게 시뮬레이션하려는, 그래서 결국 실패한 다른 시도들과 달리, 라이트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근사한 작은 컴퓨터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각을 투사하게끔 작업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고려함으로써 훌륭한 해결책을 생각해 냈다.

심즈의 묘사 레벨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심즈를 게임 이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윌 라이트의 디자인과, 프라스카의 해석 모두 멋지다. 특히 심들이 사용하는 언어(Simlish)는 “분위기”와 “감정”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